현대 미술은 보이는 것으로 가득한 인터넷 이미지와 동행하고 축적이 불가능한 휘발성 사회를 응시하며 현 정권을 비롯한 기존 미술계의 무기력함에 직접 새 영역을 만드는 것으로 대항한다.

       그런데 거의 모든 프로젝트가 사람을 대상화한다.

       싱크대를 뜯어낸 벽면에 남겨진 타일을 프레임 삼아 내걸린 그림 안방과 욕실을 가르던 벽에 난 창문 틀을 통해 보여지는 그림.

       사람들이 심각하게 느낄 때가되면 너무 늦었습니다.

       쌍을 이루는 단어들을 종종 쓰는데 이는 매우 상투적일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다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과 같다.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의미 없어진 혼합된 현실이 대두되면서 작가들 또한 과거와는 다른 작업 환경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관객이 화면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앞서 언급했듯 텍스트의 각 구간들을 듣거나 읽으며 서사의 얼개를 가늠할 때뿐이다.

       그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지도 앱을 참조하며 실제의 거리를 활보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게임 안에서만큼은 모두 훌륭한 우주시민이 되길 기대한다.

       달리 말해 유닛의 경험은 나의 경험의 반영이다.

       옛날 픽셀게임 같은 형태로 만들어졌다.

       알다시피 절박한 문제는 내 그림들이 팔려야 내 작업이 가능하다는 거야.

       한편 전시가 종료되면 그 사이 존재했던 과정과 관계는 지워지고 공간은 화이트큐브로 돌아간다.

       이러한 괴짜 이상한 놈 미친년은 이은새의 회화 속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한겨레   노형석 기자는  감각적인 인테리어풍 이미지들이 많아 애어른들 전시를 보는 것 같았다.

       게임적 리얼리티는 현실을 증강하기보다 사용자를 열화하면서 평형 상태를 모색한다.

       「플레이어를 디자인하는 법」은 신생(新生)공간과 신생 이전 이후의 시간을 플레이어 디자인의 차이에서 찾고 이러한 디자인의 조건을 이야기합니다.

       별 생각을 다해요.

       하지만 이것은 단연코 88만원 세대가 아닌 또 다른 20대의 목소리일 뿐이다.

       이미지는 증식한다.

       마음이 아픕니다.

       디자이너 전시의 새로운 성취.

       나의 산만함과 무능을 탓해봤자 이제 소용없다.

       2013년 기울어진 각운들전을 시작으로 발전 가능성 있는 신진 작가들을 육성하기 위한 기획전을 계속해 온 국제갤러리는 올해 독립 큐레이터 현시원의 기획 하에 김익현 최윤 박정혜 이미래 작가를 소개한다.

       전시장 안은 시원했지만 어쩐지 폭염의 한 가운데 있는 듯 숨이 턱턱 막히고 가슴이 먹먹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윤향로는 편집 툴의 역량을 과신하지 않는다.

       또 남들 눈치 볼 필요 없이 가격이 다 나와 있어서 좋았다고요.

       가치있다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인 개념이다.

       이러한 문제는 신생공간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다.

       카메라가 발명되자 훨씬 짧은 시간에 그림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취업준비에 생존게임에 다들 바쁘겠지만 틈나는 대로 좋은 책들을 많이 봐달라고.

       텅빈 전시관을 채운 것은 날개의 존재를 망각해버린 새.

       오랜만에 느껴보는 충격이다.

       즉 예술성을 위해 재미를 희생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