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반이었다는게 실감이 안 날 정도로 낯선 그 아이가 학교에서 죽었다.

       내딴에는 티가 좀 나도 될만한 기분 나쁜상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번 전시회에서 그 다름을 엿볼 수 있다.

       그 변화의 속도는 체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곽이브 작가가 펼칠 미지의 분투를 기대하며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본다.

         이 코미디언은 잘 모르지만 이걸 현대 미술에서는 오브제라고 합니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신세대를 다룬 이전의 글들에서는 모던과 포스트모던 사고 프레임의 충돌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작가가 없다면 기획자도 없고 기획자가 없다면 우리도 작가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언리미티드에디션을 운영하는 독립서점 유어마인드의 이로 대표는 오히려 그러한 폐쇄성이 그가 다루는 독립출판과 아트북의 성격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판단해왔기에 기존 이름을 내건 채 아트북페어를 부제로 사용했다.

       제 성향과도 맞지 않고요.

       예술가는 이제 철학자가 된 것이죠.

       그는 잠이 들었다.

       그래서 이 행사는 기존 미술시장의 높은 장벽에 대한 풍자로도 읽히고 또 대안적 미술시장의 모델로도 읽혔다.

       궁금해 죽겠어요ㅎㅎ.

       그러나 이것을 대중의 잘못으로 돌리려는 태도는 매우 옳지 못하다.

       마찬가지로 디자인 작업물인지 순수미술 작품인지 명확히 나누기 어려운 작품들도 늘어나고 있다.

       아주 조용히 모든 것을 거부한다.

       게임 안에서만큼은 모두 훌륭한 우주시민이 되길 기대한다.

       이러한 문제는 신생공간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다.

          사실상 예술과 삶의 통합을 중시하고 이미 원본과 사본 작품과 상품의 구분이 절대적이지 않은 현대미술 영역에서 굿즈는 충분히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왜냐면 작품을 사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어요.

       공감이 너무 커서 병이 되었다.

       두번째 질문은 그럼 변기가 아니라 다른 해괴한 걸 전시하면 예술이냐는 질문에 막혔다.

       작가님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도 작업을 하지만 또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도 작업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작가로서 준비가 안 되었으니까 준비를 하자 하고 시작했는데 그렇게 된 거라서요.

       세대간에도 생각의 간격이 있듯이 현대미술에서도 시대의 간격 그리고 동시대미술에서도 다양한 변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전시는 곤란하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윤향로는 편집 툴의 역량을 과신하지 않는다.

       바로 미술은 시대의 반영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뒤편 프린트작업을 뭉갠 이미지인지.

       그래서인지 지금 한국 미술계는 오로지 미술시장에만 관심이 쏠려있다.

       무한경쟁의 잔혹한 게임과 신자유주의 시스템 구축에 대해 20대들은 사회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지미술의 기념비적인 작업이었던 더블 네거티브의 마주 보는 거대한 협곡은 유통된 사진으로 기억되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