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을 진행할 때 관람자의 시점으로 시뮬레이션하면서 어떤 공간으로 인식할 것인가에 대해 계속 고민한다.

       디지털 게임처럼 변화시킨 작품이다.

       하지만 눈은 감는 즉시 생각으로 이어진다.

       컴퓨터와 디지털 툴에 익숙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림에도 맛이 있다.

       익숙한 것들의 조합과 과거부터 미래로 거슬러 올라왔다가 다시 현대에 이르는 예쁘진 않지만 날 것 그대로의 자기 고백이 인상적이고 가슴이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배우는 다시 병풍에서 나오면서 슬픈 얘기를 시작한다.

       운동을 위해 모을 수 있는 청년의 수는 제한되었고 거창한 이름에 비해 흐지부지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런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공간을 마련하기 어렵고 이는 당연히 판매가 될 길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바로 미술은 시대의 반영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대중의 취향에 타협하는 전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 동원에 성공하여 자신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았다.

       윤익: 네.

       시작부터 끝까지 다 멋지다.

       굿-즈 미술과는 다른 맥락에서 시대와 현실을 고민하는 청년작가들의 심중을 그려내 보이고 있다.

       사람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함께 활동하는 누군가의 작품 특성을 한가지로 규정하는 것에도 모순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는 언제나 그 단어의 실제 의미보다 더 크게 소비되어 왔다.

       어떤 경우는 좀 위태로워 보였고요.

       가설무대 세트장이 아닌 진짜 시스템 진짜 공간.

         늘 그렇듯 새로운 것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그러나 한국 미술의 미래를 점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작가를 찾는 일은 언제나 중요하다.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과 마찬가지로 전시의 포스터가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부여받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2015년 현재 서울의 미술계에서 펼쳐지고 있는 세대 단절적 변환의 흐름에서 가장 문제적인 인물 중 하나로서 전지적 스마트폰 시점으로 포착해낸 무기력한 청년 세대의 일상을 정신 분열적 양상으로 펼치는 작가이며 소외 상태를 긍정해버림으로써 세대화 자체를 거부해버리고자 하는 어떤 태도와 특징이 농축된 작업을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시 처음부터 세계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도 앱을 참조하며 실제의 거리를 활보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수많은 부정형들이 스크롤되는 영상이었는데 뭔가 유추해볼 수 있는 단서가 없었다.

       몇몇의 작가는 미적 인터페이스를 고안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과감해서 미술 작품으로 간주될만한 최소한의 형식을 버리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는 모습이다.

       뒤샹의 〈샘〉의 경우에는 멋있는 것도 예쁜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전시장 안은 시원했지만 어쩐지 폭염의 한 가운데 있는 듯 숨이 턱턱 막히고 가슴이 먹먹했다.

       규칙이 말하는 것을 알았다.

       작가는 역사성을 찬양하기 보다는 현재에도 파괴와 건설로 무분별하게 사라지고 있는 도시 건축물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창의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래도 매스미디어와 친숙한 80년대생 작가들의 작업들이 기존의 전시와는 맥락을 달리하려는 시도가 보였다 시대의 흐름 만큼이나 문화예술계의 변화도 빠르다.

       이것은 장소가 죽어서 다시 돌아가야할 미래의 순간을 기리면서도 시청각이 기존의 미술관과 다르게 해체 가능한 장소임을 시사한다.

       인터넷 게임 방송 게임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짐.

       영상을 통해 시간을 압축하거나 건너뛰는 것을 좋아하고 반대로 현실의 시간을 고스란히 떠내는 것도 좋아한다.